4월의 호국인물로 최경회 장군이 선정됐다.
1532년 전라남도 화순읍 삼천리에서 태어난 최경회 장군은 고려 최충의 후손이다.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삼계(三溪)와 일휴당(日休堂). 1567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사헌부 감찰, 형조 좌랑을 역임했고 장수(長水) 등의 현감을 거쳐 영암 군수, 담양 부사 등을 지냈다.
장군이 모친상으로 화순에 머물던 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전라좌도 의병 진영의 권유를 받은 최 장군은 상복 차림으로 의병장이 됐다. 최 장군은 의병부대와 함께 금산전투, 무주전투 등에서 대승했고 왜군들이 호남을 점령하기 위해 진주성으로 집결하자 목사 김시민과 함께 1차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593년 6월 가토 기요마사가 10만 왜군을 이끌고 다시 진주성을 침략하자 열세에도 불구하고 무려 9일 동안이나 방어했지만 결국 진주성은 무너졌다. 그는 의병장인 김천일·고종후와 함께 촉석루에 올라 임금의 처소가 있는 북쪽을 향해 4배(四拜)를 한 후 스스로 남강에 투신해 순절했다. 후에 좌찬성(조선시대 의정부의 종1품 관직)으로 추증(관료의 사후에 직급을 높이는 일)됐고 진주 창렬사, 능주 포충 사에 배향(공신의 신주를 문묘나 사당, 서원 등에 모시는 일)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