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호국인물 <독립운동가 박상진 선생>
Name. 관리자    Date. [17.08.01] 1136    Hit.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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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을 하다 순국한 고헌(固軒) 박상진

열사가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됐다.

울산에서 태어난 박 열사는 서울 양정의숙에서 법률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1910년 판사 시험에 합격해 평양법원에 발령받았으나

일제의 침탈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길 운명에 처하자 사임하고

만주로 갔다. 만주에서 허겸, 손일민, 김대락, 이상용 등과 독립

투쟁의 방향을 모색하던 중 1912년 귀국해 대구에서 ‘상덕태상

회’를 설립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고 독립거점으로 활용

하고자 만든 곡물상회였다. 박 열사는 1915년 대구지역 애국지

사와 함께 앞산 안일사에서 독립군 지원단체인 조선국권회복단

도 결성했다.

지역 단위의 독립운동에 한계를 느껴 강력한 독립군 단체 조직을

구상한 박 열사는 그해 다시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총사령에

대됐다. 대한광복회는 혁명적 독립운동단체로 창립 이후 전국

조직망을 구축하고 만주의 신흥무관학교 등과 연계해 독립군 양

성에 힘썼다. 자신의 전 재산을 군자금에 헌납했으며, 반민족 지

주들을 응징해 군자금을 확보했다. 1916년에는 무기 구매를 위

해 만주에 다녀오는 길에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군자금 모금을 위해 친일부호를 처단하는 의열투쟁을 전개했

다. 대한광복회의 존재가 전국적으로 알려져 정체가 탄로나자

조직이 와해됐다. 박 열사는 칠곡 출신으로 대구 동산 99칸에

살던 친일부호 장승원을 처단하고 안동에 피신해 있다가 1918년

모친의 임종 소식을 듣고 달려간 경주에서 출상을 하루 앞두고

체포됐다. 사형선고를 받고 4년간 모진 옥고 끝에 1921년 대구

형무소에서 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