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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전두환의 지시로 착공한 다부동전적기념관이 무려 40년만에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네요. 무엇 때문에 미 27연대의 전차전과 미23연대, 국군10연대 및 전차/야포증강 이런 핵심사항이 언급이 안되고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국군 1사단만의 승리라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해마다 금화리 '다부동전승비'를 찾는 미군들은 이 사실을 알까요? 무려 몇십년동안 다부동전투에 대한 소개에 자기들이 싹 빠져 있다는 것을.. 다부동전적기념관 인근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의 자료에도 보면 어처구니 없는 구절이 나온다.. 이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실 왜곡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전사(戰史)에는 북한군이 주력인 13사단과 3사단, 1사단, 15사단 등 2만1천여명의 군단 병력을 다부동 일대에 투입해 대구 점령을 노렸고, 이에 맞서 국군 1사단과 7사단 3연대 1대대, 8사단 10연대, 미군 27연대와 23연대가 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천200여명의 병력으로 싸웠다고 기록돼 있다." --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자료 '55일'pdf 14페이지.. 분명 당시 백선엽의 1사단은 위에도 언급한 미 27,23연대 / 국군 10연대 등 2개사단이상의 병력과 압도적인 전차/포병전력. 그리고 완전한 제공권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미군 공중근접지원을 받는 상황인데 국민들에게 무슨 의도로 2만1천명 대 8천2백명이라는 구도로 사실을 왜곡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더구나 이 자료는 분명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감수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때 백선엽은 그 연구소에 자기 사무실을 가지고 출퇴근했고 자문위원장이었다. 이게 뭔 뜻인가? 왜 우리측 숫자는 줄일려고 하고 상대방은 최대로 늘릴려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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