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였다. 1976년 해군 특수전 초급반 과정(22기)을 수료하고, 수중파괴대(UDT)에서 근무를 시작했으며, 미 해병대 특수전 단기과정, 공수교육 등을 수료하였다.
2000년 8월 5일, 해군 준위로 임관(해군 기행준사관 41기)하였다. 준위 임관 후에도 수중파괴대의 후신인 해군 특수전여단에서 근무하였다. 교육훈련대 교육반장, 보좌관, 특수임무대 작전지원중대장, 해상대
테러대대 작전지원팀장, 특수임무대대 소대장 등을 역임하며 각종 훈련과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35년간의 군생활 중 18년을 교육훈련대 교관으로 근무하며 2천여 명의 특수전요원을 양성하였다. 2009년 3월,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에 준동하는 해적들을 퇴치하기 위해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
(청해부대)'가 창설되자 지원하여 청해부대 1진 선박검색대작전팀 부팀장으로서 7차례의 해적선을 퇴치하는 등 맡은 바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해군특수전여단 교육훈련대에서 근무 중이던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해에서 최계임무를 수행중인 해군 천안함이 적에게 피격당하자 실종된 승조원 탐색ㆍ구조작전에 자원하였다. 당시 작전부서가 아니
었기에 출동명령이 없었음에도 "아들과도 같은 장병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야한다." 라며 구조임무에 지원하였다.
높은 파도, 낮은 수온 등 극한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실종자들을 구조하겠다는 일념으로 실종자 수색에 전념하였으나 3월 30일 강한 유속, 높은 수중압력, 저온이라는 바다 속 극한 상황 속에서
수색작전 중 전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살신성인과 군인정신, 희생정신을 기려 보국훈장 광복장,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으며, 그의 유해는 2010년 4월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제3묘역에 안장되었다.
또한,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근무지였던 창원시 진해구 진해루 해변공원, 모교인 수도공업고등학교, 포항함체험관에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동상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