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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전투

  1. 다부동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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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후의 저지선 ”

작전지역

  • 다부동(多富洞) : 대구 북방 22km
  • 대구와 최단거리로 방어선 붕괴시 대구사수 불가

주요고지

  • Δ328, 수암산(Δ518, 숲데미산), 유학산(Δ839)
  • 가파른 경사, 병풍을 두른듯한 횡격실 능선

기상(1950. 8월 당시)

  • 30여 년만의 가뭄과 무더운 날씨(37℃)
  • 비전투 손실과 기후에 적응되지 않은 미군에게 큰 타격

단계별 전투 상황

1단계 (1950.8.1~8.12) - 주 저항선(303고지 - 328고지 - 숲데미산 - 유학산)까지의 지연전

  • 1사단 12연대 : 상주 낙정리 일대에서 적 2개 대대 저지 → 다부동전투 첫 교전을 승리로 장식
  • 1사단 11연대 : 해평(현재 구미지역)일대 주둔
  • 1사단 15연대 : 3차에 걸친 적 도하공격 저지, 실패로 369고지 피탈
  • 1사단 12연대 : 369고지 탈환

2단계(1950.8.13~8.30) - 주 저항선 공방전

  • 1사단 : 주 저항선에 3개 연대 배치 → 백병전으로 북한군 저지
    북한군 : 837-647고지-진목정까지 진출. 다부동 위협 → 주 저항선 돌파 위기

3ㆍ4단계(1950.8.31~9.24) - 반격

  • 미 1기병사단 : 174고지-180고지-도덕산 방어 중 315고지 (대구 북쪽 12km 지점) 북한군 1개 대대에 의해 점령
  • 미 7기병연대 : 315고지 탈환 → 대구 위기 극복
  • 한국군ㆍ유엔군 : 9월16일, 09시 전 전선에서 총반격 개시, 9월 20일, 대구-김천-대전 축선을 따라 북으로 진격

전투경과

328고지 전투(적 3사단 ←→ 아 1사단 15연대) 왜관북방 5km, 횡격실, 대구 진입 용이

8.13 : Δ328 중심으로 좌측(3대대), 우측(1대대) 배치
※ 2대대(사단 예비)

8.14~23 : 적 3사단과 15회에 걸친 공방전

  • 01:00경, 왜관북방 10km 지점으로 도하
  • 14일 01:00공격, 수적열세로 인한 후퇴(50% 희생)
  • 새벽 → 탈환 → 적 포사격

8.16 : 미군에 의한 융단폭격(노르망디 작전 후 2번째)

  • 5.6kmx12km(B-29기 98대, 960톤)

제파식 공격 : 1일 저녁,10회

8.24 : 미포병 지원하 적 3사단 궤멸

  • 7회 피탈, 8회 역습으로 고지 탈환
  • 2천여 구의 시체 → 처절한 격전

수암산(Δ518), 유학산(Δ839)고지 전투(적 15사단 ↔ 아 1사단 12연대)

유학산 : 지대내 높은 800m 고지군, 북고남저(北高南低), 정상 700m 부근은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대구진입과 주변도로 통제가 용이한 요새지

8.12 : 낙동강 연안에서 철수, 다부동에서 재편성
※ 1대대(Δ837), 2대대(수암산), 3대대(유학산)

1대대

  • 8.14~15 : 3차에 걸친 673고지 공격 => 실패
    ※ 적의 대규모 수류탄 공격으로 8~9부 능선에서 참변
  • 8.16~21 : 수차례에 걸친 Δ837 주간 공격
    ※ Δ517까지 적 점령, 908도로 차단 당함
  • 8.22 : 대대장이 결사대 인솔, 야간 기습공격으로 탈환

2대대

  • 8.14~24 : 수차례에 걸친 수암산(Δ518) 공격/탈환
  • 11일간 주간 정면공격 과정에서 1,000여명 희생

3대대 - Δ517 공방전 거듭 끝에 23일 06:00 유학산 탈환

  • 8차에 걸친 수많은 희생 끝에 목표 탈환
  • 야간 기습공격의 중요성 체득(적: 주간 7회, 아: 야간 8회)

전투결과

북한군 8월 공세 저지, 대구사수 → 전차 30대 격파, 전사상자 17,500여 명의 전과
※ 아군피해 : 전사상자 1만여명

인천상륙작전(9. 15) 성공 계기 마련

반격(북진)을 위한 여건 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