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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앨리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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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최초의 전차전, 볼링앨리 전투

The First Tank Battle in the Korean War: The Battle of the Bowling Alley

8월 21일 저녁, 다부동에서는 6·25전쟁 최초의 전차전이 펼쳐졌다. 전차와 자주포를 앞세운 북한군은 조공으로 국군 1사단 11연대를, 주공으로 미 27연대를 향해 대규모 야간공격을 감행해왔다. 동시에 북한군은 신주막에서 다부동 접근로의 양측 능선을 따라 각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을 전진시키고 있었다. 이에 미군은 모든 화력을 집중하여 북한군 보병과 전차를 분리시킨 후, 전차와 자주포를 공격하였다. 이때 쌍방의 전차포에서 발사된 철갑탄들이 5시간 동안이나 불꽃을 튀기며 굉음으로 골짜기를 진동시켰다. 전차포탄이 어둠을 뚫고 좁은 골짜기를 따라 날아가는 광경을 바라보던 미군들은 그 모습이 마치 볼링공이 핀을 향해 재빠르게 미끄러져 가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그날의 격전에 볼링앨리(Bowling Alley) 전투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음날 북한군 전차 9대와 자주포 4문, 수대의 트럭 그리고 1천 3백여 구의 시신이 확인되었는데, 이 전투로 인해 대구를 향해 진격하던 북한군 13사단 전력의 3/4이 손실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8월 22일에는 북한군 13사단 포병연대장(정봉욱 중좌)이 작전지도를 갖고 국군에게 귀순함으로써 북한군의 사기는 극도로 저하되었다.


  • 미군 M-26 전차 VS 북한군 T-34 전차

역사상 최초의 한미연합작전

The First Korea-US Combined Operation in History

워커 미 8군 사령관

볼링앨리 전투가 펼쳐지기 전, 다부동 일대에서 아군의 전황이 불리해지자 워커 미 8군 사령관은 8월 17일, 경산에 집결한 미 25사단 27연대를 1사단에 배속시켜 다부동 일대 에서의 전력이 크게 증강되었다. 미군이 국군 사단 방어지대에 처음 투입된 후, 다부동 일대로 진출하려는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가 펼쳐짐으로써 역사상 최초의 한미연합 작전이 전개되었는데, 이는 국군과 미군의 신뢰가 더욱 견고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존 H. 마이켈리스

존 H. 마이켈리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하였으며, 전후에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위의 보좌관으로도 근무하였다. 6.25전쟁에서는 ‘울프하운드(Wolfhounds)’라는 별칭을 가진 미 27연대를 지휘하며, 다부동 전투에서 통신병 1명만 데리고 최전선의 총탄이 교차하는 지점까지 나아가 적정을 살폈을 정도로 전투에서 앞장섰다. 또한 최초의 한미연합작전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볼링앨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이후 미 8군 사령관, 유엔군 총사령관, 주한미군 사령관 등을 역임하고 육군대장으로 전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