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벼슬을 버리고 항일운동에 나섰던 민종식 의병장(1861~1917)이 '12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됐다. 선생은 1882년 과거에 급제해 이조참판까지 지냈지만,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구국운동에 매진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부터 의병을 조직하는 등 항일운동에 전면으로 나섰다. 충청도 홍산에서 최익현, 임병찬 등과 연합해 의병부대를 일으킨 이후 서천, 비인, 판교를 거쳐 남포에 이르렀다. 한때 군세가 1만여 명에 달해 을사의병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민종식 의병장이 이끌던 의병부대는 일제에 큰 위협이 됐다. 이에 일제가 급히 토벌대 를 파견해 홍주성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의병부대는 83명이 전사 하고, 145명이 일제에 생포되는 등 크게 패했다. 이후 선생은 몸을 피해 청양, 온양, 공주 등지에서 저항하면서 수차례 일제의 추적에서 벗어났으나 공주에서 체포돼 1907년 7월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법부대신 이하영의 주선으로 사형을 면하고 순종 즉위기념 특사로 풀려났지만, 구금 중 얻은 후유증으로 1917년 별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