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신임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한 독립운동가이자 한의사인 ‘왈우(曰愚) 강우규 의사’가 의거 100주년을 맞아 3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됐다.
강우규 의사는 어린 시절부터 한의학을 공부하여 한의사로 활동하였으며,
뛰어난 의술로 30대 초반에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이후 사립학교와 교회 등을 세워
민족 계몽운동에 앞장섰으며,
1909년에 단천 출신의 유명한 독립운동가인 이동휘 선생을 만나 55세의 나이에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1919년 3.1운동 소식을 듣고 신흥동(길림성 요하현)에서 만세운동 주도하며 본격적인
항일 투쟁에 나서게 된 강우규 의사는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해 길림성 요하현
지부장을 역임하며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제가 새로운 총독을 임명한다는
소식을 듣고 총독 처단을 결심한다.
러시아인에게서 구입한 폭탄을 지닌 채 원산을 거쳐 서울로 잠입한 강우규 의사는
9월 2일, 서울역에서 신임총독 사이토 마코토(齊藤 實)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으나
37명의 일제 앞잡이들을 살상하고 아쉽게도 총독 피살에는 실패하고 만다.
일제에 의해 체포된 강우규 의사는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
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
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라는 충절이 담긴 유언을 남기고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3월, 강우규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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