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마지막 의병장으로서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서다 순국한 채응언 의병장이 2017년 ‘11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됐다.
1883년 평남 성천에서 태어난 채응언 의병장은 대한제국의 육군보병부교(陸軍步兵副校)로 복무하던 중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에 투신했다. 1908년 황해도 안평 순사주재소와 수안 헌병파견소를 습격해 일본 헌병을 사살했으며, 함남의 마전동 순사주재소를 급습해 다량의 무기를 노획해 군비를 갖췄다.
또 1911년 이후 300여 명의 의병대원을 이끌고 경기·강원·황해· 평안·함경도 일대의 산악지대를 넘나들며 일본 수비대와 일본 헌병을 공격했고, 1913년에는 황해도 대동리헌병분견소를 기습해 일본군 다수를 사살하는 전과를 세웠다.
1915년 고향인 평남 성천군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두고 항일 게릴라전을 전개하면서 20여 명의 일본 헌병과 친일 밀정 등 을 처단하자, 일제는 선생을 체포하기 위해 ‘적괴 채응언수색대’를 조직했다. 그해 여름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부하들을 이끌고 마을로 내려오던 선생은 잠복 중이던 일본 헌병과 격렬히 싸우다가 체포돼 호된 심문을 받고 평양형무소에 수감됐으며, 살인 및 강도 죄목으로 기소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선생은 “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강도란 당치 않다”며 항변했다.
감옥에서 자신의 옷으로 끈을 만들어 목을 매 자결하려 했으나 사전에 발각돼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1월 평양형무소에서 순국 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