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유학산 9부능선,
폐허가 되어 사라진 토담집처럼 다 허물어간 참호 안에서 살며시 고개 내민 나지막한 패랭이 꽃,
그 아래 부서진 청석 돌 틈에서 귀뚜라미가 운다.
살아서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고
달빛 타고 하늘로 올라간 어느 젊은 군인의 영혼이 내려앉은
꽃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는것 처럼 노을이 채 지지도 않는 어스름한 초저녁부터
귀뚜라미가 울고 있다.
풀벌레조차 숨을 죽이고 증오마져 연기처럼 사라지던
폭풍처럼 총성이 울리던 그 해 처절한 여름밤
죽음의 강을 건너기전
빗물 같은 청춘의 눈물을 핏빛 골짜기로 흘러 보내며
부모 형제 처자들을 떠올랐을 것이다.
나란히 둘러 앉아 갱죽을 먹던 기억도 떠올랐을 것이다.
“엄마”라고 불러도 보았을 것이다.
수평선 너머로 아스라이 멀어지는 돋단배처럼 움켜진 고향의 추억들이
둥둥둥 빠져나가면
고귀한 생명도 불꽃 지듯이 사라져 갔을 것이다.
해마다 유해 발굴단이 유해를 발굴해 호국원으로 모시지만
아직도 수많은 전몰용사들이 나선 땅 이곳에 안타깝게 묻혀있기에
설움이 밀려오는 달빛 고운 캄캄한 여름밤이 오면
귀뚜라미는 해마다 그렇게 울고 있을 것이다.
* 유학산(839m) 경북 칠곡군. 한국전쟁(다부동전투) 최고격전지로 1950. 8. 13 ~ 9. 24까지 10여일동안 10여차례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전투로 인민군 17,000여명 아군10,000여명이 사망하는 참사의 현장이 바로 유학산이다.